사람들이 국제무역에 대해 일련의 체계적인 생각과 논리, 의지를 갖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지리상의 발견이 있고 난 이후부터이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한 신대륙의 발견과 바스코 다가마에 의한 인도항로의 발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유럽과 미주, 유럽과 동양의 무역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유럽의 일부 연안에서 행해졌던 무역이 원양 무역의 시대로 진입하고, 세계무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쳐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던 때로 국민국가의 건설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국민국가 건설 움직임과 결부되어 각국은 국력 신장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대내적으로는 상비군을 두어 왕권을 강화하였다. 또 대외적으로는 금, 은을 중시하여 수출무역을 촉진시키는 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상주의적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제무역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후반 아담 스미스에 이르러서이다.
국제무역에 대한 이론은 순수이론과 정책이론으로 나누어지고, 순수이론은 다시 정태적 무역이론과 동태적 무역이론으로 대별된다. 정태적 무역이론은 고전 무역이론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무역이 왜 발생하며 그 이익이 누구에게 귀착되는가 하는 점을 주로 다룬다. 무역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스미스의 절대생산비설에서 처음 거론된 다음 리카도의 비교생산비설을 거쳐 핵셔, 오린의 요소부존이론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가다듬어졌다. 핵셔, 오린에 의해 무역의 실증적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하여 무역의 발생원인과 무역이 생산, 분배 및 소비에 어떤 효과를 발생시키는가 하는 점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들 고전적 정태무역모형들은 은 그 후 다국, 다재, 다요소모형으로 확장되고 일반화되었지만 순수 무역이론의 두 가지 명제 즉 무역이 왜 발생하며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가에 대한 연구는 정태무역이론의 과제로 남아 있다.
동태적 무역이론에 대한 연구는 정태적 무역이론에 대한 연구보다 훨씬 늦게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연구는 195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 초기에 연구는 인구의 성장이나 기술진보 등 외생적 요인에 의한 경제성장이 한 나라의 무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에 와서는 당시 활발히 연구되던 성장이론에 힘입어 무역과 성장을 동시에 고려한 내생적 성장모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후는 내생적 성장 모형의 실증적 측면 외에 규범적 측면, 즉 무역과 성장의 상호작용이 어떠한 후생효과를 유발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중상주의와 고전무역이론
국제무역에 대한 이론의 시작은 경제이론의 발전과 그 시기를 같이 한다. 즉, 1776년에 발표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다.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가 갈파한 내용 중 현대까지 인용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자유경쟁의 원리와 분업에 의한 협업의 원리이다. 일반적으로 아담 스미스가 이 자유경쟁의 원리와 분업의 원리를 국제경제 현상에도 확대하여 적용하려한 시도를 체계적인 국제무역이론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오늘날 고전무역이론이라 지칭할 때는 19세기 초반 영국의 리카도, 밀 등에 의해 완성된 무역이론을 의미한다. 이들의 무역이론체계 또는 이들이 만들어 낸 무역모형을 흔히 리카도 모형이라고도 한다. 이들 이론의 특징은 경제를 사회계급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부의 원천은 생산물을 생산하는 노동이라는 노동가치설에 입각하여 경제현상을 설명하였다. 국부로서의 노동은 노동의 질(노동의 생산력)과 노동의 수(노동량)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이를 높여줌으로써 국부가 증진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수단으로 파악된 것이 분업이다. 분업이란 하나의 생산과정을 세분화시키는 것으로, 세분화된 생산부문은 특화를 의미한다. 아담 스미스는 이 특화에 의해 노동의 생산력도 높아지고 생산물의 증대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상주의란 15세기 이후 약 3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통용되었던 일련의 사상으로, 국부의 축적은 귀금속, 특히 금과 은을 획득하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무역도 이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았다. 경제정책으로서의 중상주의의 핵심은 초기에는 해외에서의 금과 은의 획득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곧 산업자본을 위해 국내시장을 확보하고 국외시장을 개척할 목적으로 수행되는 보호주의적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외국에서 생산된 완제품의 수입금지와 제한, 외국산 원료의 수입장려, 국산품의 수출장려, 국내원료의 수출금지 등의 조치를 정책으로 실행한 것이다.
경제이론으로서의 중상주의를 보면 근대자본주의는 아직 생산부문까지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하였다. 중상주의자들은 이윤이 기본적으로 생산과정이 아닌 유통과정에서 발생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일반적 등가로서의 귀금속이야말로 부의 본원적 형태라고 보았다. 귀금속은 산지 이외의 지역에서는 외국무역만이 그 획득수단이었으므로 무역 차액이 순이 되게 하는 것이 정책의 중심목표로 추구되었다.
중상주의가 성행했던 시기는 수많은 지리적 발견에 따른 왕성한 해외진출과 국민국가 건설의 초기단계였다. 따라서 중앙집권적 국가제도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상비군을 유지하여야 했고, 그에 따른 경비지출을 위한 화폐의 수요가 급속히 증대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은 상당하나 지지를 받았다.
절대생산비설과 무역이익
중상주의는 장기적으로 모든 국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18세기 후반 강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국제분업론과 이에 기초한 자유무역론으로서 중상주의와는 달리 보호무역보다는 자유무역이 국부를 증대시키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절대 생산비설을 통해 자유무역이 교역당사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국부의 원천이 금, 은과 같은귀금속의 보유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국에 주어진 자원의 제약하에서 재화의 생산가능성이나 소비가능성이 증대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절대생산비설은 모든 상품은 각기 그것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자, 즉 생산에 있어 절대우위를 갖고 있는 생산자들에 의해 생산될 때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라 본다. 나아가 이렇게 생산된 재화를 교환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제무역도 이러한 절대우위의 원리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영국이 포르투갈에 비해 어떤 재화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의 투입이 더 적은 경우 영국은 그 재화생산에 있어 절대우위를 갖는다.
영국이 직물 1야드를 생산하는 데는 5인의 노동이 필요하고, 포르투갈은 10인의 노동이 필요하다. 포도주를 1갤런 생산하는 데는 영국은 10인, 포르투갈은 5인의 노동이 필요하다. 이때 영국은 직물에,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절대우위가 있다고 한다. 반면 영국은 포도주에, 포르투갈은 직물생산에 절대 열위가 있다. 그러므로 일국의 절대우위의 상품이란 자국의 노동소요량을 외국의 노동소요량으로 나누었을 때 1 이하가 되는 상품을 말하는 것이다.
각국은 외국보다 낮은 생산비를 가진 절대우위 상품에 특화하여 생산하고, 외국에서 국내생산비보다 저렴하게 생산된 절대 열위의 상품을 수입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무역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영국은 직물에, 포르투갈은 포도주 생산에 특화하는 것이 유리하므로 이를 중심으로 국제분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 이와 같이 생산된 상품을 교환할 경우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게 무역이익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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